Charlie on the MTA(실제 제목은 MTA)은 재키 슈타이너와 베스 로맥스 휴즈에 의해 쓰여진 오브라이언의 몇 몇 캠페인 송 중 하나이다.이 곡은 스스로를 the Boston People Artists라고 명칭한 브라이언의 지지자 그룹에 의해 1949년에 녹음되었다. 이 그룹은 이 곡을 라이브로 공연했고 보스턴 거리 곳곳에서 이 노래가 울려퍼지게 되었다. 노래는 금새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 곡은 오브라이언의 캠패인에 도움이 되지는 못했는지 그는 5명의 출마자중 득표수가 가장 적은채로 선거를 끝내게 된다.
몇 년 후, 브라이언의 선거 캠프의 한 자원봉사자였던 사람이 윌 홀츠라는 포크송 가수에게 이 노래를 가르쳐 주고 그는 이 노래를 1957년에 합창곡으로 녹음했다. 이 노래는 크게 인기를 끌고 보스턴으로부터는 폭주하는 항의저항을 발생시키기에 이른다. 왜냐면 이 곡은 지방의 한 급진주의자로부터 영웅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1950년대 매카시 시절(50년대 미국은 이 이름빼면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오브라이언과 그의 아내는 다른 많은 진보당 사람들처럼 공산주의자나 그 동조자의 혐의를 받게 된다. 오브라이언은 혐의를 부정했지만, 부부는 이후 보스턴에서 직장을 잡을 수 없게 되고 그들이 나고 자란 메인주로 돌아가기를 강요받는다.
논란의 결과로 홀트의 녹음은 방송이 금지된다. 그러나 1959년 킹스톤 트리오는 이 노래를 녹음해서 시중에 내놓는다. 홀츠가 경험했던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 그들은 실제 인물인 월터 오브라이언을 허구의 캐릭터 조지 오브라이언으로 바꿨다. 이 노래는 크게 인기를 끌고, 미국민요가 되어 캠프파이어등지에서 불려지고 온 세계의 가수들이 민요나 펑크 또는 롹이나 레게등 그 스타일을 바꿔가면 부르게 된다.
월터 오브라이언은 학교 사서와 서점 주인이 되었다. 그는 1998년 7월에 유명을 달리 했고 재키 슈나이더와 베스 로맥스 휴즈 또 그 외 Boston Peoples Artists의 멤버들은 그에 대해 애정어린 추억을 지녔으며 그들이 공유했던 진보정치와 Charlie on the MTA라고 알려진 고전민요를 창조한 그들의 역할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거지같은 자작 번역이므로 매끄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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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티켓은 보스턴의 공공 교통 티켓이다. 일회권도 있고 일주일권도 있고 한달권도 있다. 이것만 있으면 subway든 버스든 기간내에 마음대로 탈 수 있고, 12살 아래 어린이는 어른 동반자가 있으면 무료이다.
왜 이 티켓의 이름은 찰리티켓일까? 어제 Allston에서 돌아와 Resovoir역에서 51번 버스를 기다릴 때였다. 버스 정류장에 찰리 티켓의 역사에 대해 써 놓은 판이 게재되어 있어 유심히 읽어 보았다. 왜 이야기에 이렇게 감동을 받게 되는지 나도 모르겠다. 왠지 너무 마음이 따뜻해 지는 이야기였다.
그저께 Shaws에 가면서 우연히 핸콕에 사는 다른 백인 아주머니 자매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다가오는 9월에 시장선거가 있는지 여기저기 "Dan 누구를 Mayor로 "같은 캐치프레이즈판이 붙어 있어 저 사람은 party가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 이번에 나오는 출마자가 모두 democratic party라고 열통 터져 했다. 그 분들은 republican이라고 이미 밝힌바.. 나는 Boston은 오래된 도시이고 왠지 보수적인 기운이 있는 것 같은데 의외라고 했더니 아주머니가 여기 민주당이 우세이고 공화당이 쪽을 못써서 속상하고 이렇게 한 party가 계속 우세하면 안 되는 거라는 의미의 얘기를 하시는데 말이 빨라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위와 같은 역사를 가진 찰리가 티켓 이름으로 시에 의해 명명된 것을 보면, 보스턴이 보수적인 지역일 것이라고 생각한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겟다. 오브라이언은 결국 5명의 출마자 중 5등이었지만 당시엔 실패했다 싶은 그의 작은 족적도 지금 이 지역의 바탕을 흐르는 정치적 흐름의 물고중 하나라고 나는 믿고 싶다. 아마 그게 이 잔잔한 감동의 원인이겠지.
우리가 하루를 살며 남을 위해, 나를 위해 하는 작은 행동 어느 것 하나 큰 흐름 속에서 의미없는 것은 없는 것 아닐까?
그럼 문제의 그 노래를 한 번 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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