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라이언은 공학도 답게
- 내가 보기에 너네한테 두가지 옵션이 있는 것 같아. 그냥 두고 가거나 내가 좀 더 깎아줄테니 zip car를 이용하거나. 의자 네 개 정도는 일반 세단에도 들어갈 거야.
으응? 그래. 근데 나중에 니 친구가 의자 못 주겠다고 하면 어쩌지? 나는 의자가 6개라서 이런 복잡한 상황에도 이 셋트를 사러 온 거거든.
-그건 걱정 마. 걔가 그렇게 나오면 내가 줘 패든지 할께.
좀 멈칫했던 마음이 라이언의 농담에 웃으며 풀렸다. 그리고 라이언은 오는 길에 다시 메세지를 보내 와 친구와 연락이 닿았고 오늘 의자들을 가져갈 수 있겠다고, 예기치 않게 귀찮게 되어 미안하다고 했다. 라이언 너.. 정말.. 착한 분이시군요! 네!
우선 의자 두개와 식탁을 들고 왔지만, 닦으며 사실은 너무 좋았다. 한 쪽은 책상으로 한 쪽은 식탁으로 아예 길게 쓸 요량으로 리프 하나를 달았더니 길이가 약 2m는 되었다. 의자가 아직 두 개뿐이지만 앉아보니 견고했고, 무엇보다 식구들 간식을 사과상자같은 박스가 아닌 번듯한 식탁에 놓아주니 정말이지.. 갑자기 이무기가 승천해 용이 되고, 크로마뇽인이 자고 일어나서 뉴요커 된 것 같은 이 느낌이라니.
트럭을 반납하고 와, 약속시간이 되어 남편이 의자를 가지러 가겠다고 일어섰다. 의자를 실으면 차에 자리가 모자랄 것 같기도 하고, 또... 귀찮기도 하고..
나 지우랑 집에 있을까?
-그럼 그러도록 해. 근데 여기 주소가 이상하다. 네비에 쳐 봐도 잘 안 나와...이 아파트 이름이...
남편이 이렇게 저렇게 지도를 뒤져보더니.
-아항! 이제 알겠다. 나 갔다 오께.
어딘데? 이상한 할렘가 그런데면 어떻게 해? 같이 가자.
-아니, 하바드 기숙사라서 주소가 이상했던 거야
친구도 하바드생인가보넹....
- 하바드생 친구가 하바드생인게 왜?
(하긴...) 근데..나도 같이 갈까? '하바드의 공부벌레들'에 나오던 하트가 지금도 있는지 가서 한번 봐야겠어.
- 흐흐흐.. 그럼 그러던가..
그렇게 해서 돈 많은 학교내에서도 더욱 돈내, 부내 엄청날 것 같은 Harvard Bussiness School에 가 보게 되었다. 일러준 기숙사가 강의 남쪽 Bussiness School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도착해서 라이언의 친구라는 데이비스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가 빌딩2앞에 있는데 어디로 가야해?
-우리는 빌딩 11이야
어..어딘질.. 이 근처에 어디 구내 지도 있니?
-그래, 그럼 기다려
거기가 하바드 셔틀 정류장이어서 학생들이 셔틀을 기다리며 떼로 몰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얘네들이 어찌나 수다스러운지.. 탁 트인 길 가인데도 귀가 멍할 정도. 학부생들이라 그런가?(어려보였다.) 왠걸,나중에 지우와 나만 따로 걸어 나오며 경영대 대학원생들끼리 Garden Party 하는 곳을 가로지르게 되었는데 여기도 넓은 잔디밭이 쩌렁 쩌렁 울리게 다들 수다를 떨고 있었다. 여긴 더 시끄러웠다. 여기서 가만히 쭈구러져 있으면 나 찐따 예요.. 라고 인증이라도 하는듯 강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수다들을 떤다. 아마 잘 들어보면 나는 이렇게 열심히 뭘 하고 있고.. 암튼 뭔가 하고 있다는 얘기들일 것 같았다.
라이언의 친구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그제야 구내 지도가 눈에 들어 왔다.
이 아이의 이 자신만만한 표정은 뭐니? 이 구역은 내가 접수...
빌딩11은 지도로 보니 거리가 꽤 되었다. 그냥 알아서 찾아가겠다고 할 걸... 미안해졌다.
인상이, 좋게 말해 굉장히 강한 백인 남자가 저벅 저벅 다가오길래 쫄았다. 오느라 짜증났나?
'정말 그 거지같은 의자 몇 개 받아서 상황 더럽게 귀찮군' 싶은 표정..
다행히 그 남자는 우리를 스쳐갔다.
아우 저런 얘가 와서 막 귀찮다고 그래대면 어쩌냐..하고 있는데
쨔쟌.. 세상에! 우리가 만날 친구는 기우와 다르게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으니...
나무 의자를 양손에 하나씩 네 개를 다 들고 백형과 흑형 하나가 웃으면서 다가왔기 때문이다.
-안녕!
오 마이 갓! 너네들이 다 들고 올 줄 정말 기대 안 했어. 그 의자 굉장히 무거워. 빌딩 11이 여기서 꽤 거리가 멀던데. 이제 내가 들을께..
-아냐 아냐.. 너네 차 어딨어?
그러고는 차 앞까지 와 의자들을 사뿐히 놓아주며 "Good luck!"하는데
정말 너희들이 진정한 챔피언, 아니 Harvard Hottie 들이로구나.
얘네들이다.
저벅 저벅 걸어 돌아가는 그 친구들을 보며 진심 이 젋은 친구들 앞 날에 좋은 일 많기를 빌었다. 너네들 한국 오면 누나가 갈비라도 한 접시 사 주고 싶구나.
- 한국에서 꿈도 안 꿔 본 트럭을 다 몰아 보는 나는 그렇다 치고,
사모님 코스프레는 커녕, 자기는 중고 식탁 하나 산다고 이 난리 굿을 떨고 ..
이게 무슨 '안식'이냐...
그래서 special thanks to 나의 이 난리굿을 다 받아준 남편.
그리하여 완성된 나의 식탁 셋트.
거친 도심지를 떠난 너를 닦고 광내며 교외의 안식과 기쁨을 주리.
이 식탁 위에서 귀하고 좋은 음식, 좋은 작업, 좋은 이야기 많이 많이 나누게 되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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