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1일 토요일

Night of Stars 2

사실 이 동네 무가지인 Improper Bostonian에서 광고를 볼 때만 해도 이렇게 대단한 공연을 보여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이 추천하지 못했다. 대부분 아이들 있는 집인데 밤이슬 맞아가며 나와야 하고, 공연장이 공공 교통을 사용하면 우리 사는 곳에서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도 주말 저녁, 소소한 공연이라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찾아갈때 까지 그리 큰 기대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풀 오케스트라에 무대 스케일하며.. 생각보다 상당히 큰 규모의 공연이 되리라는 짐작이 되었다.  공연 30분전에 드넓은 Boston common공원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무대가 보일만한 앞자리로 꾸역꾸역 찾아들어가서 서서라도 볼 심산으로 길가에 서 있었다. 친절하게도 이미 자리를 펼쳐놓고 있던 예쁜 백인 아가씨가 자리를 조금 내 주어 겨우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사람들이 야외용 접이 의자를 많이들 가져왔는데, '우리도 사 올걸..'그게 오늘은 정말 아쉬웠다.
발레를 왜 종합예술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던 공연이었고.. 보스턴 발레가 이러면 뉴욕 발레는 어떻다는 건지 상상도 할 수 없구나.. 꼭 보러 가야겠다고 남편과 이야기했다. 지우는 오늘 공연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집에 와서 씻고 나니 바로 잠에 떨어져 물어볼 수 없었다. 지우도 좋았던 밤으로 기억해 주었으면..
이 곳 경찰권력은 한국과는 비교도 안되게 강력한데 오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염할 일들이 보였다. 경찰이 나와서 이머전시 때문에 여기, 여기 자리 일어나라고 응급차 지나갈 길 만들어야 된다며 좀 무례할 정도로 후레쉬를 흔들어대고 소리를 질렀다. 평소 경찰차 지나가면 가만 가만 비켜주고 경찰이 오라 그러면 꼼짝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이걸 보겠다고 꼼짝을 안 하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급기야 어떤 할아버지는 "우리가 알아서 볼테니까 냅두고 꺼지라구!"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르신이라 그런 배짱이 있는걸까? "야, 앉으라구! 이 자식아!" 이런 소리도 들려서 옆 사람들이랑 같이 웃었다. 내가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떠듬거려 가며 살아가고 있었던 거라니! 역시... 보스토니안들...쎄긴 쎄다.



 
 
공연보고 필받은 소피아








  별들의 밤이지만 나의 스타는 오직 너
 

 

Night of Stars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Boston Ballet 50주년 기념 공연.
50주년 기념 공연을 야외에서 무료로 개방한 것이 의미있게 느껴졌다. 프리 공연이었지만 이 하룻밤 공연을 위해 발레단의 거의 모든 무용수가 총출동하고 800시간이 넘는 리허설을 했다고 한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밤하늘 구름의 흐름이 다 보일만큼 맑은 날씨, 명확하면서도 유려한 오케스트라, 무엇보다 마지막 공연이었던 발란신 안무의 차이코프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는 평소 발레와 친하지 않던 나에게 새로운 세계의 아름다움을 알려주었다. 공원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탁 트인 드넓은 야외에서 다양한 인종의 수 많은 사람들과 예술의 정수를 함께 누리며 가슴 떨려했던 감동..
정말... 잊을 수 없는 밤이다.
 
 
 

2013년 9월 19일 목요일

jamaica pond

가족과 같이 다니면 힘든게 하나, 가끔은 여러개가 있다.
이런 저런 물건들 보기 좋아하고 Clearence라고 하면 특히 꼭 한 번은 훑어 봐야하는 나를 가족 구성원 나머지 둘은 이해해 주지 않는다. 오늘은 downtown 에 혼자 가서 폭풍쇼핑을 하리라 마음 먹고 길을 나섰는데 오마이갓...문을 잡그고 딱 나서는 순간, 불행인지 다행인지 maintanence에서 사람이 나왔다. 저녁에 10몇 도까지 내려가는 날씨에도 난방이 안 되 수차례 complain 넣었더니 오늘 드디어 전문가가 오셨다. 그 동안 바깥날씨가 더 추워야 하네 어쩌네 했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우리로 말하면 보일러에 에어가 차 있었던 것. 우리는 한번씩 물을 빼 주면 되는데 얘네들은 그런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보일러를 만들었는지 이 라인의 모든 아파트를 다 찾아봐야 한다고... 나는 우리집에 다락이 있는지도 오늘 처음 알았다. 희안한게 여기 난방 파이프는 천정쪽을 지나서 내려온다. 우리집은 미국에서 20년씩 산 분들도 '미국에 온돌집이 있었다고?' 라고 되묻는 바닥난방이 되는 집이다.

- 어.. 너네집은 아닌 것 같아. 옆집 파이프 라인을 살펴봐야할 것 같아.

오늘 제발 저녁에 난방되게 해 줘. 응? 정말 얼어죽을 것 같아. 이 파이 먹을래?

- 알았어. 난방이 되기 전까지 내가 여길 뜨지 않을께..

그러더니 정말 저녁에 바닥에 뜨끈하게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오! 여기가 천국....

암튼 그래서 downtown은 못 가고 주저앉았는데 마침 곤이엄마가 Jamaica pond로 산책가자해서 다녀왔다.
 
여기도 한강 고수부지처럼 오전에 편한 차림으로 운동하는 아줌마들도 있는데 특이한 게 남자 여자 젋은이 노인등 다니는 사람들의 연령이나 성별이 상당히 다양했다. 곤이엄마와 갤럭시 플레이어에 음악을 걸어놓고 들으며 걷고 이야기하니 참 좋았다. 간만에 한국말로 폭풍수다를 떠니 뭔가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 호수 주변이 한 바퀴 도는데 한 30분쯤 걸리고 한적한게 자주 오게 될 것 같다.
 
어제 진짜 맛있는 잡채를 해서 나눠주길래 너무 맛있게 먹어서 오늘 점심을 샀다. Thai Spice라고 Roxbury쪽에 있는데 take out을 주로 하는 집 치고 가격이 아주 싸진 않지만그래도 한국에서 파는 타이음식 가격에 비할 바 아니다.  재료도 신선하고 맛도 괜찮다. 이제 본격적으로 보스턴 맛집 순례를 해 봐야 하는데 언제나 시작할 수 있을지... 에혀..
 오늘 먹은게 이건 아닌데 얼마전 먹었던 것 찍어 놓은 것.
 
 
 

2013년 9월 18일 수요일

authenticity

authentic이라는 말을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말을 좋아한다.
스스로 이 authenticity가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 아닐까?
너는 진정 네 삶을 100% 살고 있니?

관조적인 자세라는 말, 알기만 알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는 말의 세련된 표현 아닐까?  
삶이란 몸으로 부딪히는 거지 머릿속의 가상이 아니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빨리 실현해야 할 것 같은 조급증이 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아직 실천하고 실현할 힘이 있을 때, 더 많이 무언가를 해 나가며 살아야 한다.

2013년 9월 17일 화요일

At Harvard




 









 

메이플라워호

플리머스 시내로 들어가면 메이플라워호를 복원시켜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메이플라워호에도 자원봉사자들이 열심히 방문객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는데 특히 갑판에 그림같이 앉아있던 17세기 코스튬의 아가씨가 인상적이었다. 꼭 베르메르의 그림 진주 목걸이 소녀에 나오는 소녀처럼 생겼다. 나는 물었다.
 
100명이 넘는 사람이 타고 오기에는 배는 좀 적은 것 같아.
 
- 그렇지. 갑판 아래 선실 가 봤지? 정말 좁고 냄새 나서 너무 힘들어.
 
이걸 그 많은 사람이 그렇게 타고 오다니.. 정말 영웅적인 세일링이다...
 
 
어떤 30초반의 백인 남자가 지나가면서 이 여인에게 한 질문때문에 한 바탕 웃었다.
 
 
그런데 말이야.. 저걸타고 석달가까이 오면서... 그럼.. 남자하고 여자하고 그건 어떻게 해?
 
- 뭐? 너 아래는 내려가 보고 하는 소리야? 너 같으면 하겠어?
 
응! 어메리칸들이 이걸 알면 해피하진 않겠다. 그런데 나는 할거야
 
- 바로 옆에 사람이 있고 저렇게 좁은데?
 
그래도 앱솔루트리, 나는 할거야.
 
옆에서 모른 척 듣고 있다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 짧은 인생, 많이 해라.'

플리머스 플랜테이션

간만에 여유있게 앉아 글을 쓴다.

지난 주말엔 영국의 청교도가 미 대륙에 처음 도착했다는 플리머스에 다녀왔다.
플리머스 플랜테이션이라는 곳에 먼저 들렀는데 이 곳은 당시 청교도들의 생활상과 이미 미대륙에 정착해서 살고있던 인디언의 당시 삶을 재현한 곳으로, 우리로 치자면 민속촌 같은 곳.
이 곳에서 머물며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은 당시의 옷을 그대로 입고 질문에 답을 해 주는데 당시 상황을 현재 상황인 양 표현하고 대답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냥할 때 총에 불을 어떻게 붙여요?
우리는 부싯돌을 가지고 다니며 부딪혀서 불꽃을 만들고 그 불꽃을 이렇게 끈에 붙여서 장전을 하지. 성냥이라는 건 들어본 적도 없어.

날씨가 많이 추운가요?
지난 겨울에도 누구 누구가 얼어죽을 뻔... \\

뭐 이런식..

또 들어가기 전 극장같은 곳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하는데 일방적인 청교도의 입장이 아니라 당시 살고 있던 원주민들의 입장과 이주해 온 청교도의 입장을 모두 보여준다.



원주민들에게 청교도들은 침략자이고 청교도들에게 원주민은 개척지의 무서운 적이었고, 처음에 사이좋게 지내며 추수감사절도 함께 보냈다는 일설과 다르게 둘 사이에 감돌았던 긴장과, 유럽 사람들이 들어오며 많은 원주민 인디언들이 살육되고 새로운 풍토병에 많은 인원이 죽었던 것도 보여준다.
 
 17c 여자아이들이 입었던 원피스를 입어 본 지우.

 수공예관


 청교도 구역 전경들





 원주민 구역
 
원주민 구역의 당시 집에 들어가니 왠지 족장의 부인 포스를 풍기는 분이 앉아 계셨는데 연세가 꽤 되셨을 듯 싶었다. 한 백인 노인분과 열심히 얘기를 하는데 들어보니 절대로 하면 안 된다는 종교 이야기를.. 아주 평화로운 얼굴로 하고 있었다. 백인 노인과 다른 세명의 관광객들은 유니테리언 교도였고 원주민 할머니는 원주민 전통 종교를 믿는 분이었다.

나의 종교는 세상의 모든 사물에 신이 있다고 믿는다. 기독교는 세상에 신은 오직 한 분이라고 믿지?

그게.. 우리는 좀 유니버설한데...

 유니테리언들은 자신들의 그와는 조금 다르다면서 디테일한 설명에 들어갔는데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조용 조용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에서 왠지 평화를 느꼈다. 명동거리의 예수 천국, 불신지옥을  저 분들에게 얘기하면 무슨 이야기를 할 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