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2일 목요일

부고

투투의 김지훈이 다른 세상으로 갔다.
영식오빠가 포스팅에서 다른 어떤 연예인의 부고보다 슬프다고 했는데 그 심정, 공감이 된다.
그들의 공전의 히트곡 일과 이분의 일이 언제쯤 나왔던건가 찾아봤더니 1994년.
내가 대학 2학년이 되던 해이다. 여고시절이라는 말이 주는 어떤 향기라는 것이 있지만, 입시라는 도그마에 다 휩쓸린 한국의 젊은 아해들에게 한쪽에 쭈그려 박힌 냄새나는 걸레 신세였던 감성들이 제대로 자리잡고 폭발하는 시기는 아마 대학 시절이라는게 내 생각. 그래서 그 시절의 노래를 들으면 멀쩡하던 위장이 술을 찾고 뇌는 타임머신을 타게 되는 것 아닐까? 그 시절의 노래들, 그 노래를 불렀던 가수들은 내 감성의 날개를 높이 띄워주는 바람같은 존재인 것이다.
고인이 75년 생이라는 걸 보면 그는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큰 성공을 한 셈이다. 신생그룹의 보컬이었지만 훤칠하고 입담도 있었고 온 동네에 자신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젊음을 살았다. 그 시절 그는, 그들의 노래처럼 어딜가나 환영받고 즐거웠을 것이다. 나같으면 그런 세상과 사랑에 빠졌을 것 같다. 그는 잊혀지고 세상도 서서히 등을 돌리고 자기 할 일을 하기 시작했겠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는 대부분 일과 이분의 일을 부른 투투의 김지훈이었고, 그런 그의 이 생에서의 삶이 40이 채 안 되어 이런 귀결을 맞았다.  삶의 의외성, 갑작스러움이 비통하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이생의 종결 이후에는, 부디 가장 행복하고 평온했던 때로 돌아가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3년 12월 10일 화요일

스케이트, 곤이네

큰 곤이 작은 곤이네와 함께 지우가 스케이트 렛슨을 받은지 거의 두 달이 되어간다.
지우는 렛슨 외에도 주말에 자주 링크에 가곤 했는데 곤이네 형제는 11월에 여행을 많이 다녀서 연습량이 적었다. 오늘 다음 텀에 사인하려면 레벨테스트가 있다면서 갑자기 코치가 아이들 연습중에 레벨을 적더니 코디네이터에 넘기고 지우는 다음 레벨에 넘어가고 곤이네는 지금 레벨에서 한 텀을 더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결과가 나오고 나자 큰 곤이 작은 곤이가 막 울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서럽게 울었다.
사실 울고 싶은 건 나였다. 지우가 다음 레벨에 가는거야 좋은 일이지만 그동안 곤이네와 같이 다니면서 내가 더 기뻤기 때문이다. 화요일 하루는 곤이네와 시간이 맞으니 놀 수 있고, 오빠들하고 놀면서 지우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동안도 속 터 놓는 사이인 곤이 엄마와 이야기 하니 추운 링크의 블리처에서 보내는 시간도 괜찮았다. 그래서 코디네이터한테 2번이나 같은 레벨 보내달라고 했는데, 일천한 영어로 얘기를 해서였는지 일종의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지금도 지울 수 없을 만큼 기분 상하는 경우도 당했다.
곤이 엄마는 아이들의 떼나 신경질이나 고집불통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진심을 기울여 들으려고 하는 자세와 의지가 제대로 갖춰진 사람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사인 나로서는 배우는 것이 많다. 곤이엄마가 차근히 아이들에게 이유를 묻자 울면서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큰 곤이 "나는 얘(지우)하고 같이 노는게 좋아서 시작한건데 이제 시간이 틀려지면 같이 놀지도 못하고.. 엉엉엉.."
작은 곤이 "억울하다고! 같이 시작했으면 그냥 같이 가야지 왜 다른 반에 넣냐고.. 그리고 오늘 새로 산 스케이트 신어서 제대로 타지도 못했는데.. 엉엉엉"
평소같으면 제 아는 거, 할 줄 아는 것에 입 대고 넘어가기 좋아하는 지우도 분위기 파악하고 가만히 앉아서 큰 곤이 눈물을 훔쳐 주었다. 오빠, 울지마...

내 자식보다 한 두 살이라도 많으니, 더 커 보이기만 하는 사내 녀석들이 그 순간은 정말 깨물어 주고 싶게 너무 귀엽고, 안쓰럽고, 뭐든 할 수 있으면 해 주고 싶은 심정.. 곤이 엄마와 내가 이렇게 저렇게 그 이유들에 답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쓰면서 아이들도 진정되고 다시 웃고 놀았다. 저녁을 먹고 돌아간 그 두 형제를 생각하면 지금도 슬몃, 웃음이 난다.

돌아가면 이런 아이들도 다 내 학생들이 될텐데.. 하는 생각을 하던 그 짧은 순간은, 돌아가기가 두렵기만 하던 내 일터도 갑자기 그리워졌다.
근데, 아! 이제 블리처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좀 길게 느껴지겠구나..

2013년 12월 5일 목요일

Boston Symphony Ochestra

언제 한번 들으러 가야지...했던 보스턴 심포니 연주를 들으러 다녀왔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과 피아노 주자가 유명한 피아니스트 제르킨의 아드님이라고 하기는 했는데 보러간 이유는 두번째 레파토리인 베토벤 7번 때문이었다. 베토벤 7번의 2악장을 좋아해서 클라이버와 카라얀의 연주로 듣곤 하는데 이 분들이 워낙 네임밸류가 있어서인가..홈 연주라서 그런가 복장도 그렇고 뭔가 풀어진 모습. 콘서트가 비일비재하고 콧대가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비엔나 정도 원정 가 줘야 군기가 팍 오를래나... 오늘 연주도 좋긴 했지만 내가 가장 기대했던 2악장은 아주 아주 좋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2악장은 그렇지만 마지막 악장은 상당히 좋았다. 리허설은 마지막 악장만 했을까 싶었다.
이 곳 콘서트는 인터미션이 한국에 비해 꽤 길고 그 사이 사람들이 심포니홀 카페테리아에서 와인을 한잔씩 마시고 담소도 나눈다. 그 곳에 이제까지 보스턴 심포니 연주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 코쟁이 지휘자들의 초상 사이에서 동양인의 얼굴을 발견했다. 부스스한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일본인 지휘자 세이지 오자와가 여기 상임으로 29년을 있었다. 오호... 1889년 설립이래 여기 상임들중 최장기간 취임한 예이다. 이 콧대높은 보스토니안들을 어떻게 길들이며 29년을 그 자리에 있었는지...그 분도 엄청난 정신력의 소유자가 아니었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나를 보면 영락없는 동양인.

보스턴 심포니홀은 1900년에 건립되었고 효과적인 음향이 유명한 곳이라고 하는데 지우 아빠가 앉아 있던 무대 반대쪽 끝 2층 자리는 위의 3층이 막혀 있어서인지 뭔가 소리가 먹히는 듯 했다고 한다. 지우와 내가 앉아있던 자리는

3층 사이드.. 지우아빠에게 미안하게도 소리가 아주 좋았다. 특히 베이스 파트의 묵직한 공명이 살떨리게 잘 들렸다.
위 쪽 벽에 그리스식 조각들이 사이사이 배치되어 있는데 실제 크기를 가늠하자면
 이 정도...
무대 정반대쪽
 우리 자리에서 보이는 무대는 아래..
 
숨은 지우 아빠 찾기..
 
시작전 이랬던 얼굴이
 인터미션에는 이런식으로..
근데 이 아이는 왜 에미 에비 다 있는 쌍커플이 없을까..갑자기 드는 생각..

그래도 보스턴 온 이래로, 하바드 이후, 가는 길에 가장 가슴 뛰는 일이었다. 나는 잘 관리된 오래된 것들을 좋아하나보다.

브라운대학

어느 주말인가? 메사추세츠 주 밑에 로드아일랜드라는 아주 작은 주가 있는데 그 주의 주도가 프로비던스이다. 브라운 대학이 여기있다. 그 날은 여기에 갔다.

아이비리그라 해도 여기서 가까운 하바드는 덩치가 워낙 커서 건물들이 캠브리지 여기 저기 흩어져 있기 때문에 어디가 학교인지 어디가 그냥 건물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 분위기이다. 옛교정이 모여있는 곳이 있긴 하지만 아담한 편이다.  그 동안 아이비리그 학교는 하바드, 예일, 브라운, 프린스턴 등을 방문해 봤는데 프린스턴이 뭔가... 가장 상상속의 아이비리그 같았고 예일은...
예일은 그래! 대통령이 많이 나온 학교 같기는 했다. 우리는 교정보다 예일 대학 뮤지엄을 먼저 둘러 봤는데... Oh, my God..무슨 놈의 대학 뮤지엄의 콜렉션이 그렇게 대단한지... 예를 들자면 한 방에 가운데는 고호가 그 옆에 세잔, 모네, 그 앞에 들라크루아... 이런식이다. 교과서에서 들어봤던 서양 화가나 작품들이 그냥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데 그것도 좁은 방에 막 붙여 놓았다는 느낌이니 보유 작품수나 그 가격이 천문학적일 것이다. 1층의 고대 유적방은 콜렉션이 너무 모여있어서 등에 멘 가방은 조심해 달라고 가드가 얘기할 정도. 미국이 돈이 많다는 걸 대학 뮤지엄을 돌아다니며 많이 느꼈다. 특히 예일, 프린스턴... 늬네 뭐 해서 그렇게 돈이 많으니?  하바드는 가까이 있어서 아직도 굳이 안 가봤지만, 이제 하바드 뮤지엄에 '직지심경'이 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암튼 브라운 으로 돌아가서 그에 비하면 브라운은 생김이 아주 소박한 편이다. 그렇지만 사진의 학생식당 샌드위치가 너무 맛있어서 후한 점수 주고 싶다.
 어디부터 돌아볼지, 한 번 볼까?
그래, 결정했어!
 사회과학대학인데 이렇게 생겼다.

그리고 프로비던스 시내의 큰 복합 쇼핑몰에 가 봤다. 신기한게 여기는 쇼핑몰이 시 외곽에 따로 몰려 있는데 여기는 시내 한 가운데에 이런 쇼핑몰이 있다. 원통형으로 된 건물로 건물의 외벽쪽은 모두 주차장이고 원통의 내부에 가게들이 몰려 있다. JC Penny, Nordstrom, Macy's등 백화점과 Bed, Bath beyond나 극장, 그 외의 여러 옷가게, 가구 체인등이 몰려있는데 규모가 상당하다. 여기서 내가 뭘 샀지?

Dean and Deluca


나란 뇨자, 뉴욕커에게 패션 칭찬 받은 뇨자..
숙소 가까이 뉴욕타임즈 빌딩에 Dean&Deluca를 어제 저녁에 봐 두었다. 광명사는 진영이를 만날때면 터미널 신세계 지하의 Dean &Deluca에 가곤 했는데 본고장인 여기서 보게되니 반가운 마음에. 진영이, 보고싶고나.
커피가 스벅과는 비교가 안 되게 맛있고 베이커리류도 괜찮다.간단한 아침식사를 하려고 자리를 둘러 보는데 한 남자가

I like your jacket! Where did yo...u get it?
- Oh! Thanks. maybe. . Kenneth cole. . or Cole Hann? ---Anyway something cole. .
Oh! Really? I like the mixture of it.
-Yes, Thst's why I chose this.

 역시 뉴욕커들은 패션에 관심이 지대하시지 말입니다.

맛있어서 막 다 먹어버린 사진..

NYPD

오래된 영화 스피드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납치된 버스 쫓아가며 "NYPD"라고 외치지 않았었나? 내 기억속에선 암튼 그렇다. 그래서 찍어 봤다.
여기 경찰들은 몸집부터가 뭔가.. 권위적이고 사람들이 경찰에 상당히 고분고분하다. 우리나라처럼 취객이 서에 와서 행패를 부린다거나 그러는건 상상할 수 없는 분위기.

2013년 11월 11일 월요일

NYC-Empire State Building

86층 높이에서 바라본 뉴욕의 야경...
강풍에 못이겨 전망대 안으로 들어왔지만, 뉴욕이고, 밤이고, 높은 상공이어서인지 내 마음도, 지우 마음도, 지우아빠 마음도 마냥 들뜨는 것 같았다.

뉴욕의 이상한 힘은 이런걸까? 뉴욕에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이 도시가 가진 담론들이 이미 다 내재화 된 듯한 느낌.

나는 왜 뉴욕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처럼 느끼는 걸까? 즐겨봤던 Sex and the City때문에? 내 시간을 잠시 스치듯 지나갔지만 잊기 힘들었던 뉴요커 친구때문에? CD광 남편덕에듣곤 하는 뉴욕필과 Met Opera의 음악때문에? 이미 너무나 대표 넘버들이 익숙한 Broadway의 뮤지컬때문에? 일요일 오전이면 먹으러 나가던 소위 브런치 메뉴들이란 것이 이 곳에 그 흔한 Diner들에서 퍼져서?

암튼,,, 미국있는 동안, 여러번 오게 될 것 같다. 뉴욕.

NYC-Junior's

Junior's라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Lion king이 상영중인 Minscoff극장옆에 있다.  치즈케익이 유명한 곳인데, 뮤지컬 끝나고 바로 허기를 채우려다 보니 가까운 이 곳으로 들어갔다. 지우아빠와 지우는 뮤지컬을 보느라 점심을 건너뛰었고 나는 그 동안 5번가를 돌아다니르라 무릎이 꺾일 지경이었다. 여기 Junior's는 치즈케익 품질유지때문에 뉴욕에만 지점이 있다하는데 진짜인지는 모르겠고 암튼 진짜 뉴욕치즈케익이긴 한 셈이다. 치즈케익팩토리보다는 더 나은 것 같다는 것이 내 입맛. 패밀리 레스토랑의 본고장 미국답게 음식들이 완전 기름지고 헤비하다. 이런 종류의 음식에서 굳이 좋은 점을 찾자면, 한 번 먹으면 두끼 가까이 배가 안 고프다는 것. 식사 후 부른 배를 안고 굳이 치즈케익을 테이크 아웃한 건 거의 십 오년전쯤, 친구와 치즈케익에 홀릭해서 시시때때로 그걸 사 먹었던 기억이 나서였다. 라리의 치즈케익도 맛있었고, 스타벅스가 들어오며 뉴욕치즈케익을 팔기 시작하니 또 그거에 넘어가서 막 먹고 다녔다. 그 시절의 지방, 지금쯤 내 몸 어딘가에 다 그대로 있겠지? 흐미ㅎㅎ

그냥 오늘따라...  H와 치즈케익을 먹으며 보냈던 그 시간들이 자꾸 떠오른다. 치즈케익이라는 걸 나에게 알려준 H, 아마도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녀 역시 이 맛을 뉴욕에서 왔던 예전 남친에게서 배웠을 것이다. 치즈케익을 한 접시 앞에 두고 나누었던 그녀와 나의 수 많은 이야기들. 그 담소들은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의미인걸까? 삶이란 그냥 흘러가 버리는 걸까? 아니면 내 몸 속 어느 한 지방 세포를 이루고 있을 그 시절의 치즈케익처럼 쌓이고 쌓이는 걸까? 문득 궁금해 진다.
지우의 시간속에서도 부모와 함께 이 순간들이 쌓이고 있는걸까? 먼 훗날, 뉴욕에 와서 여길 지나며 엄마, 아빠와 함께 2분의1 핫독이라해서 시켰더니 어른 머리 길이 만한 소시지에 놀라 자빠지던 일을 기억해 줄까?
 
 

2013년 10월 23일 수요일

descriminating

그동안 묵혀두었던 ale을 한 병 반째 먹고 있다. 여기 오니 이런 저런 맛있는 맥주들이 많아서 자꾸 술이 느는 것 같다. 한국 맥주는 반성 좀 해야할 것 같다.

엘미라의 엄마는 완전한 백인이고 아빠는 수단 출신의 아프리칸이다. 두 사람은 다 의사였다.엘미라는 중동사람처럼 보인다. 엘미라는 미국 흑인과 결혼했다. 아이들은 흑인처럼 보인다. 몇 주 전인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는데 엘미라의 아들 제이가 다른 백인 아이와 놀고 있었다. 늘 그런 것처럼 남자아이들은 서로 차기도 하고 깔아 뭉개기도 하고 그렇게 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백인 남자 아이의 엄마가 와서 제이에게 "Don't touch him" 이라고 말했다. 우리 아들 건들지마.. 뭐 그런 얘기쯤 되겠지. 나는 못 들었는데 나중에 엘미라가 얘기해 줬다. 엘미라는 갑자기 표정이 확 바뀌더니 나에게 "저 얘 엄마가 인종차별주의자"라며 집으로 가 버렸다.  그때까지도 나는 엘미라가 좀 오버한다는 생각도 했다. 그 백인엄마는 흔히 말하는 과잉보호적인 부모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우는 더 놀고 싶어해서 나는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그 백인아이가 다른 백인아이와 이전과 같이 서로 차고 깔고 뭉개고 노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 엄마는 다른 백인 아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말로는 들었지만 그렇게 명확하게 목도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나는 좀 충격을 먹었다. 얼마전 인터내셔널 패밀리를 위한 시당국의 워크샵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브루크라인시의 인구 통계를 보면 50%가 넘는 인구가 메디컬분야나 엔지니어링등에 종사하고 있고 70%가까운 인구가 대학원졸업자이다. 정말 '놀랄 노'라고 할 수 있는 통계이다. 통계는 이 카운티가 미국내 거의 탑랭킹에 가까운 높은 교육과 직업 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엘미라도 lawyer다. 내 머릿속에서 교육이란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열린 자세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커뮤니키가 전체적으로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을 했었는지도...

그게 몇 주 전인데 어제, 그 엄마를 놀이터에서 또 마주쳤던가 보다. 엘미라의 아들과 그 백인엄마의 아이가 다시 놀려고 시작하자 엘미라는 자기 아들에게 "그 애한테서 떨어져 놀지마" 란 요지의 말을 했다. 갑자기 그 백인 엄마가 엘미라에게 쫓아오더니 "What the f### are you doing?" 으로 시작하는 말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손가락질을 하며 "How dare you do this to my son.." 블라 블라.... 니가 어떻게 감히 내 아들을 상대로 니 아들에게 놀지말라는 그 따위 말을.. 이런 요지의 말들이...
엘미라는 lawyer인 만큼 나중에 내가 들어도 감탄할 만큼 차분하게 대응했다. 그런데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다. 그 백인엄마는 오늘도 픽업타임에 엘미라에게 와서 "We need to talk" 이라고 했다. 엘미라는 "나는 할 얘기도 없고, 너와 더이상 엮이고 싶지 않아." 라고 했지만 그 엄마는 -엘미라의 말을 따르자면-  사과를 받고 싶어했다고...감히 사과를...

내 생각에 그 엄마는 엘미라의 외모로 미루어 엘미라를 스스로를 충분히 방어할 수 없는 상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여러 사람앞에서 상식밖으로 대해도 되는 언어도 안 되고, 논리도 안 될, 유색인종- stay home mom 정도로 생각하고 그렇게 덤비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퍼스널 스페이스에 대한 존중이나 "Excuse me"를 짜증날 정도로 입에 달고 사는 이 곳 분위기에서 그런 식의 행동을 아이들 놀이터에서 했다는 것은...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이 세상은 무엇인가가 다른 상대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과연 가득차 있는 걸까? 사람들은 계속 자신의 잘못된 세계관과 문제를 짊어질 조금 다른 그 누군가를 찾고 있는 걸까? 그게 인종이 섞여 사는 중앙 아시아나 유럽, 미국에서는 인종의 문제로, 한국같은 단일인종 국가에서는 정치관이나 역사관이 다른 상대에 대한 증오와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는걸까? 세상은 과연 발전하고 있는 걸까?

내 ale, 이제 다 먹어 간다. 이제 자야겠다. 엎어져 자는게 브래인 디톡스라는 합창단 후배의 말을 들어야지.

2013년 10월 20일 일요일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하루 24시간이 부족한지 모르겠다. 잠을 두 시 가까이 되어서 자도 낮에는 할 일이 한 가득.
해야 할 일이 아닌데, 하는 일들.......도대체 뭘 하며 살고 있었지?
주말에 여행가고,
아침에 일어나 아이 학교 준비하고, 돌아와서 거의 엘미라와 커피타임가지고...어떤 날은 5시간 내내 얘기한 적도 있다. 워낙 서로 백그라운드가 다른 지라 살아온 얘기하는데 아직 소재가 고갈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우가 오기 전까기 계속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다. 뒷문을 자주 열고 살다보니 집도 너무 거지같이 하고 있으면 지나가다 불러들인 동네 이웃에게 미안한 일이라 청소라도 하고 식탁위라도 치워 놓아야 하고...
어쨋든 새 살림이다 보니 사야할 것들이 자꾸 생기고 그 핑계로 다운타운에 나가서 쇼핑하고 구경하고 안 먹어본 샌드위치라도 있으면 한 점 사 먹고 돌아오면 지우가 온다.
지우는 하교하면 학교놀이터에서 두 세시간쯤 놀거나 꼭 친구네 집에 가거나 친구를 데려온다. 아이들이 집에 오는 날은 더 분주하다.  끼니를 챙겨 먹이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손 놓고 노는 것을 보기만 할 수는 없다. 오죽 아이들이 들랑 날랑 하면, 건너집 터키 할머니는 내가 baby sitting 하는 줄 알고 있다. 어떤 날은 우리집에 아이들이 일곱명이 있는 날도 있었던 것 같다. 바르나, 제이, 아미네, 이샤이, 아이옐리, 레이, 레이네 오빠 등등등...그래도 아이들이 주변에서 왁자하게 노는 걸 보고 있으면 왠지 기분이 좋다. 지우가 picky하게 굴때면 왜 저러나 싶어 못마땅 하거나 아이들끼리 편이 갈려 다툼도 하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소리가 그런 것 같다. 저녁 시간은 동네의 소소한 이벤트에 가거나 또 저녁도 먹고..하다보면 지우 자는 시간은 꼭 9시 30분을 넘기고..
이 동네 한국부모회가 있는데 학교 PTO에 정식으로 속해있는 소모임이다. 처음에 주소록 파일 만드는 거 돕는다 했다가 이상하게 꼬여 총회있던 금요일 바로 전까지는 그거 준비한다고 또 이것 저것...

뭔가 좀 organizing하고 생산성을 높이도록 해 봐야겠다.

2013년 10월 15일 화요일

앵겔지수 최고 찍을 것 같아...

 
 
관자와 랍스터 그리고 와인... 뒷일을 생각지 않고 먹어대는 이 가족. . .

2013년 10월 3일 목요일

Maine 랍스터 기행







주말동안 메인주로 여행을 갔다. 랍스터 먹은 것만 생각난다. 처음 도착지도 바닷가 근처 해산물 식당, 물론 랍스터를 먹었다. 랍스터의 본고장이라는 메인이지만, 한국에 비해선 싸다해도 300g도 안 될 것 같은 랍스터를 2만원넘게 주고 먹는 것이 왠지 속이 쓰렸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조개관자 요리도 지난번 플리머스에 갔을 때 보다 너무 조금... 거긴 12불 정도에 관자를 산으로 쌓아주었는데 여기는 25불에 그 반.. 흠...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의 메인이 달라 보이기 시작.. 그걸로 성이 안 찬, 해산물 킬러 남편이 숙소로 오는 길에 Shaws에서 랍스터를 파는 걸 보고는 내일 아침 여기서 랍스터를 사다먹자고 꼬였다. 마리당 7.99 오호.. 그렇다면 두 마리 먹자고 불을 지폈다. 여기는 랍스터를 쪄달라고 하면 그냥 쪄 준다.

다음날 아침 득달같이 달려나간 남편이 엄청 큰 랍스터를 두 마리 사가지고 들어오며 울상을 지었다. 왜? 7.99는 파운드 당이었다. 큰 걸로 두 마리 골라 잡으니 38불.. 다 쪄서 계산할 때서야 '아차..'싶었던 거지. 여기서 또 속이 쓰렸지만 '그래 한국에선 이거 10만원 넘는거야' 그러면서 먹었다. 근데 어항에 들어있던 거라 그런지 상당히 비리고 또 큰 것이 맛이 없는 것 같다. 에흑,, 내 아까운 38불...

이걸로 끝이 아니다. 아.. 이제 랍스터 그만 먹자.. 쫌 아닌 것 같다.
다짐에 다짐을 하면 차를 끌고 세바고 국립공원으로 향하려던 찰라 시내를 지나며 아주 허름한 구석집에 Biggest Lopster Roll이라는 간판을 내가 본 것이다.
뭔가... 숨은 장인이 자신이 직접 잡은 랍스터를 박리다매로 넘길 것 같은.. 다 허물어져 가는 식당... 남편도 사실 아직은 랍스터를 포기 못 한거지.. 그럼 가격이나 알아볼까.. 하며 슬그머니 차를 돌렸다.
랍스터 롤은 토스트 식빵 위에 랍스터의 살만 발라 속을 채운 것이다. 가격은 얼마?
오.. 마이 갓.. 거의 30불.. 이게?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랍스터는 살을 발라보면 얼마 안 된다. 테이블을 둘러보니 식빵위에 올라간 랍스터 살이 기실 한 세마리는 잡아야 하는 것 처럼 보이긴했다. 여기서도 주문... 그나마 여기서는 상당한 선방. 신선하고 속이 찬 랍스터 롤이 지금도 생각나네..

아무튼 그러니까...우리가 랍스터에 얼마를 쓴 거지?

field trip

지우 소풍간 날. 장소는 보스턴 칠드런스 뮤지엄. 규모가 어마어마한 건 아닌데 요소요소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것들을 많이 갖춰 놓았다. 지우는 한국에서 Arthor비디오를 많이 보고 좋아했는데 이 곳에는 한 섹션이 다 아서를 주제로 되어 있다. 예상하기로는 이 섹션을 아주 좋아할 줄 알았더니 그 보다는 버블과 연극 공연, 그리고 네트로 막아진 아주 큰 크라이밍 센터를 좋아했다.
학교에서 학생들 보호를 위해 보조교사(샤퍼론)에 자원하라고 두 번인가 공지가 날아와 자원했다. 여기 엄마들, 학교 자원봉사에 상당히 적극적이다. 아이들 소풍은 2시간여 정도인데 아이들 스무명에 샤퍼론으로 지원한 엄마가 9명. 또 이 자원봉사 엄마들은 자기가 알아서 차 타고 와서 박물관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아이들이 스쿨버스 타면 자신이 알아서 돌아가야 한다. 엄마들이 자기 아이와 짝이 된 아이 한 명해서 약 두 명 정도씩 전담을 해서 데리고 다닌다. 한국같으면 '왜 엄마들 따라오라고 해서 엄마 못 가는 아이들 속상하게 하냐'고 난리, '얘들 그렇게 맡기면 보조교사도 있으면서 교사는 뭐하냐'고 난리. '이러면 엄마들 교통편 정도는 알아서 준비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난리... 그럴텐데 전혀 불평들이 없다. 엄마들이 아이들 다 데리고 다니고 선생님은 박물관 중앙에서 기다린다. 저 좀 여기 학교에 취직 시켜주시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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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비행기 조종실



여기 오기 직전까지 애정하던 아서의 뇌와 내장을 보면 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표정이 생각을 가늠할 수 없군..





 이 클라이밍 센터가 상당히 독특하고 아름답게 생겼다.
한 시간 남짓, 박물관 둘러보고 박물관내 극장에서 어린이 연극을 관람했다. 사실 시시한 내용이긴 한데 아이들은 너무 재미있어 했다. 생각해 보니 여기 아이들은 '시시하다'라는 말을 잘 안 하는 것 같다. 내가 못 알아듣는 건가? 한국같으면 '에게...'할 것들도 꽤 있는데, 동네잔치라던가.. 하루 하루가 학교 끝나면 놀이터에서 놀거나 플레이데이트하거나 부모따라 공원가거나 하는 일이 대부분이라 그런지 뭔가 조금 특별하면 이런 저런 재는 것 없이 신나하고 잘 노는 것 같다. 어린이 배우가 필요하다고 배우들이 자원할 사람 하니까 여기저기서 막 손을 드는데 지우도 손을 들었다. 뒤에 앉아있었는데도 "거기 퍼플 티셔츠 입은 어린이!" 하면 지목해 주어 지우도 무대에 나갔다. 지우의 역할은 puppy...

라이드를 해 준 야엘리 엄마와 오며 가며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고, 지우 노는 것도 보고...다 좋았는데 한 가지, 지우가 박물관에서 나와 스쿨버스에 타려고 기다리며 나를 보고 막 눈물을 흘렸다. 가다가 돌아보고 '흐흑...' 하며 울고, 가다가 또 돌아보고 '흐흑..'하며 울고...십리도 못 가서 발병나는 아리랑을 미쿡에서 제대로 시연을 하는 것이다. 원래 아주 어려서 부터 신기한 것만 보면 앞도 뒤도 안 보고 쫓아가던 아이이다보니 이런 건 거의 처음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 아주 예외적인 일이었다.  지우가 그러는 걸 본 다른 엄마들이 자기 가슴을 부여잡고 "Oh.. She's so Sweet.", "That's so heart breaking.."그럴 정도이다 보니 나도 마음이 아렸다. 학교가서 점심 먹고 나면 또 바로 데리러 가느라 학교앞에서 만날텐데도 그러넹. 소풍이 끝나서 일 수도 있지만 그보단, 재미있게 잘 지내는 것 같아도 낯선 환경에서 지내며  저도 무의식중에 힘이 드는 것 아닐까? 그래서 가끔은 아주 감정적이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