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7일 목요일

간만에 본 엘미라

오후에는 Elmira를 잠깐 봤다.
엘미라의 남편이 오고, 나는 칸쿤을 다녀오고 해서 거의 2주 가까이 보지 못했다가 얼굴을 모니 너무 반가왔다. 자주 본 사람들 사이에는 텔레파시가 생기는 거 아닐까? 어제 밤에 나도 데이즈로 문자라도 날려 보고 싶었는데 아니나 달라? 오늘 아침에 엘미라에게 짧은 메세지가 와 있었다. 그런데 문자를 확인한게 오후 3시 넘어서.. 지우가 오늘 튜터링 하는 날이라서 데리고 오는 길에 엘미라네에 잠깐 들렀다.
가족이라는 게 참 희안하다. 엘미라의 남편은 외교관이라 해외에 있어, 엘미라와 두 아이들만 있을 때와 남편이 있을 때, 집안의 공기 자체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녀의 남편 알치노는 이 층에 있어서 오늘 방문때에는 얼굴도 볼 수 없었는데도 말이다. 아이들도 좀 더 생기있어 보이고, 엘미라도 더 안정되게 보이고.. 결혼한 부부는 될 수 있으면 함께 있는 것이 여러모로 좋은 것 같다.
불가리안 마켓에 갔다면서 거기 과자 몇 개를 나누어 주었다. 사소한 것이라도 나누고 싶어 하는 이런 마음은 언제나 따뜻하게 느껴진다. 엘미라와 나의 인생의 항로가 달라, 우리가 만나는 접점이라는 것이 이 한 때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서로가 생경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서로 생각하고 아끼게 되는 것이 삶의 신비인 것 같다.

skate

오늘, 갑자기 스케이트를 등록하고 타러 갔다.
어제 선희씨가 숙임씨에게 인원이 모자라 폐강될 것 같다고, 같이 하자고 하는 했다는 얘기를 듣는 자리에 있었는데 숙임씨가 "언니, 같이 해요. 해요" 해서 "그럼, 그럴까?"하며 별 생각없던 수강 등록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수동적인 인간이다. 사람들은 내 첫 인상을 상당히 강하게 보고, 독립적으로 보기도 해서 이런 나를 보면 상당히 의아해 한다. 원서도 읽으면 해석도 오래 걸리고 해서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잘 안 보는데, 누가 선물이라고 사 주면 그래도 사 준 거니까 봐야지 하는 의무감으로 본다.  왜 그럴까..
처음으로 링크에 서 보니 생각보다 미끄럽고 약간 겁도 났다. 스케이트 레슨이래 봐야, 여기 레슨들이 다 그렇듯이..  잠깐 시범 보여 주고 늬네가 알아서 타세요.. 하는 식이다. 한 다섯 번쯤 넘어진 것 같다. 그래도 한 시간 남짓 타다 보니 앞으로 무게 중심을 주면 넘어지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얀 링크 바닥을 쳐다보며 중심을 잡으려고 얘쓰며 스케이트를 지치다 보니, 왠지 마음이 평온해 지는 것 같았다. 아마 연아선수도 이런 링크의 서늘하고 차분한 느낌이 좋아서 스케이트를 좋아했으려나?
내가 타보고 한 가지 지우에게 미안한 것이 생겼다. 지우에게 스케이트를 사이즈3으로 사 주었었다. 그런데 스케이트는 절대 크게 신으면 안 되는 것 같다. 발에서 벗겨질 것 같은 느낌에 자꾸 발에 힘을 주게 되고, 몸에 비해 무거운 스케이트가 사이즈가 커질수록 더 무거우니 그것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지우가 그냥 평범한 슬라이드 할 때에도 어느 때는 중심이 잘 안 잡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게 스케이트가 너무 커서였던 듯 싶다. 내년 겨울까지는 신게 하고 싶어서 아이들 옷이나 신발살 때 흔히 그러듯 한 치수 큰 걸 사주었는데 처음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에게 힘들었겠구나.. 싶다.
스케이트도 스케이트지만 숙임씨, 선희씨와 함께 타면서 넘어지고 낄낄 거리고 하다보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재미있었다. 타다가 넘어져서 빙판에 앉아 있으면 "할 게 없어, 소트니코바 흉내 내는 거야, 지금?" "여기 빨리 그 녹색 날개 좀 가져다 주셈!"그런 농담들.. 운동하고 배가 고파, 숙임씨네 몰려가 라면을 먹었는데 어찌나 꿀맛인지,... 이런 저런 수다를 떨며 라면 먹는것도 재미있었고...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대단한 곳을 간 기억들도 남겠지만 이렇게 친구들과 소소한 일상을 다른 배경에서 함께한 기억들도 문득 문득 돌이키게 되며 그랬던 날들을 그리워 할 것이 분명하다.
칸쿤 다녀와서 계속 방바닥 파고 들어가려던 찰라, 이런 소소한 운동이라도 하게 되니 기분 전환이 되어 참 좋았다.
이번 봄학기에는 하바드 어학원 등록하라고 남편이 권유하는데, 이제 더 이상 기관에 소속되어 숙제하고 그러는게 꺼려지고 하고 싶지가 않다.

2014년 2월 12일 수요일

Secret Reader

이 곳 학교는 학부모의 학교 봉사나 학교 발전 기금 모금 행사에 참여하기를 상당히 강하게 권장한다. 학기초에 아예 돈을 얼마씩 기부하라고 전단지까지 다 뿌린다. 한국에서는 학부모들은 대부분 이런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한다. 한국에서 듣기로는 미국 학교는 학부모들을 학교로 불러들이지 않고 그래서 미국학교가 좋다는 불평을 많이 들었는데, 이건 뭔가요? 미국 정신 문화의 고향이라고 자칭하는 MA주의 보스톤인데 여기는 미국이 아닌가 봉가.
얼마전에는 학교에 Secret Reader로 가서 책을 읽어 주었다. 말그대로 비밀리에 부모들이 날짜를 정해 교실에 갑자기 나타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것이다. 날짜는 담임선생님이 싸인업 지니어스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공지하면 부모들이 그 웹싸이트에 들어가서 자신이 갈 수 있는 날을 기재한다. 다 해야 하는 건 줄 알고 나도 하긴 했는데 들어가 보니 몇 번씩 싸인업한 부모들도 있고 학기초 가까운 날짜는 이미 다 차 있었다. 이런 열성들이라니.... 나중에 보니, 낯짝 두꺼운 나같은 이들이나 뭣 모르고 했지, 한국 학부모들은 자신의 발음을 고려해서인지 이 프로그램에 잘 참여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들은 겨우 30분 못 되는 시간이지만, 자신의 부모가 나타나 친구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것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인 것 같다. 지우가 어느 날, "엄마, 엄마도 시크릿 리더 해 주면 안 되요?"라고 묻는 것이다. 짐짓, 등록하지 않은 척, "생각해 볼께." 라고 했다.
몇 일 전, 갑자기 교실에 내가 나타나자 지우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예전에 들었던 스토리텔링 기법을 떠 올리며 서툰 발음이지만 최대한 현장감있게 동화책 인물들의 성격을 구현하려고 애를 쓰며 책을 읽었다.
첫번째 이야기는 베드타임 스토리를 아빠가 읽어줄 때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가 마음대로 이야기를 지어내고 끝내버리는 쥐에 관한 이야기, 나름 반응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두번째 이야기는 라푼젤 동화를 살짝 비튼 이야기였는데,
"So, 라푼젤 was 블라블라"
지우반의 데이빗이
"라푼젤? You mean Ra-PUN-zzzZel?" 그러는 거다.
입으로는 그랬지. "쌩큐 포 코렉팅 마이 프로넌씨에이숀" 쌩긋 웃어줬지만, 속이 쓰렸다. ㅋㅋㅋ
암튼 나는 지우를 위해 뭔가를 했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왔고 그 날 픽업타임에 지우를 데려오며 "오늘 엄마가 시크릿 리더 하니까 어땠어?" 득의만만하게 물어 보았다.

"그게... 다른 엄마, 아빠들은 평범하게 읽는데 엄마는 목소리 흉내를 내서 쫌.... 창피했어요."
Oh! My! God!
내가 그 수모를 겪어가며. . 이거 왜 한거니?

문화수업 준비

이상하게 분주한 날이다.
아침에 윤서네에서 금요일에 할 문화수업 준비를 했다. 여기는 학교에서 학부모 참여를 많이 요구한다. 윤서엄마와 나는 피해갈 수 있으면 피해가자 라며 잠자코 있었지만, 역시... 선생님께서 "코리안 컬쳐 수업은 언제로?"라고 물어와 아주 기꺼운 '척'하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우리의 수업컨셉은 한국의 음력설인데 간단한 PPT로 설날, 세배, 떡국, 놀이에 대해 설명하고 투호와 제기차기를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여기 다국적 아이들을 상대로 문화수업을 한다는 것, 화살대같은 가는 나뭇대에 화살촉같은 반짝이 종이와 깃털을 붙이고 선물로 줄 스티커를 나누고 복주머니를 만드는 일은 들리는 것처럼 환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인형눈 붙이는 일처럼 단순 노동의 반복으로 복주머니 23개, 투호대 40개를 만들고 태극무늬를 자르고... 소치 올림픽 페어스케이트를 보며 이것을 준비했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은 우리가 미국에 있으면서 맨날 브런치 먹고, 외국인 친구들과 쏼라 쏼라 떠들고 저녁이면 파티가는 줄 알겠지? 이렇게 쌔가 빠지게 학부모 노릇하느라 인형 눈 붙이는 일 비슷한 거 하고 있는 줄 모를거야, 절대.."
그래도 해 놓고 나니.. 뿌듯했다. 의상전공의 윤서엄마가 교구상에 가서 이것 저것 빨리 일을 끝낼 수 있는 것들을 척척 골라 담아서 그나마 선방한듯. 이제 수업만 잘 하면 되는데. 이 곳 아이들이 흥미있어할지...

지우는 오늘 처음으로 튜터링을 했다. 재미있었다며 숙제를 오자마자 바로 하고 있다. 저녁에는 곤이네와 아이들 공부를 봐주기로 했는데 연락이 안 된다. 어떨지 모르겠다.

2014년 2월 11일 화요일

잡설

어제 월요일은 지우가 학교에 가서 돌아오기 전까지, 최소한의 집안일 후, 배깔고 누워 전자책을 읽었다. 간만에 읽는 한국책이 반갑고, 뭔가 변비처럼 밀려있던 머릿속의 말들이, 다 배출되는 시원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물론, 타인의 글이지만.

조용히 침잠하며, 다시 나란 인간의 본질을 돌아보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들을 찾아서 키워가는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이 겨울이, 이 적막한 동네가 그런 나의 자의식을 자꾸 도닥거리며 집 안으로 돌려 들이는 느낌.
가끔 한국의 친구들과 소식을 주고 받으며, 이곳에서 잊고 있었던 나의 내면이 다시 복기되고 그런 느낌에 위안을 얻는 때가 있다. 해봐야 일상잡기의 짧은 이야기들이나 페북이나 밴드의 댓글들이지만 아마도 그들은 모를 것이다. 이식된 곳에서 지난 역사를 모두 잊고 어리둥절한 장기가 옛 몸의 피를 만난 느낌? ( 이곳에 의료인들이 많아서인가? 이제 비유가 아주 이상해 지고 있다. )후후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양가적인 입장은, 가정의 주인이 되는 것을 회피하지 말 것과, 밖으로 나가면 더 적극적으로 남을 위한 일을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도구의 인간

케이프 코드 짧은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며 랜썸에서 몇가지 필요한 것을 샀다.
요즘 지름신이 들어서인지 커피 메이커도 두 개나 사고, 크리스탈잔도 사고..

처음 미국에 와서는 최소한의 살림으로 살고 떠날때 처분할 것 없이 나가자는 생각이었는데, 역시 인간은 도구의 인간인지..... 미국체류 반이 지난 이 시점에서 집기들을 자꾸 사 들이며, 이 편한 것을 왜 이제? 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 스위퍼, 바닥 닦는 부직포를 끼우는 밀대는 그야말로 신세계. 미련하면 몸이 고생이라고.. 키친 타올로 온 집 바닥을 닦다 보니 운동은 된다만, 정말 청소가 두렵기까지 했다. 그리고 신발장, 3단 신발장이 하나 있으니 집 현관이 어찌나 깨끗해 졌는지.. 20불 조금 넘는 이것을 왜 안 사고 그 지저분한 현관을 방치한 것일까?

적절한 도구를 잘 쓰는 것도 생활의 미덕이다.

Province town

그간 블로그에 너무 격조했었다.
그간에도 여기저기 많이 다녔는데,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진아가 와서 뉴욕에 갔었고, 지난주에 케이프코드에 간 것. . 지금은 이게 생각나는 일의 전부..

지난 금요일 저녁에 선희씨네와 홍교수님을 초대해 저녁을 먹고 다음날 함께 케이프코드로 떠났다. 우리가 들었던 province town inn의 작은 로비의 벽난로를 켜고 술을 먹던 기억이 따스하다. 또, 그 동네에서 제일 맛있다는 Napi's에 가서 저녁을 먹은 것도 기억에 남는다.

지우가 두 시간이 넘는 방파제를 걸어 Wood end? 이던가? 그 해변가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 일이 큰 발전이었다. 겨울바다의 적막함,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적막을 즐길 새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어려서 대야의 고모네 집에 가면 그 동네의 야트막한 야산이 있었다. 아마도 일곱살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 야산을 넘어가면 말하는 토끼가 있고 무지개가 곱게 걸쳐진 멋진 동산이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곤 했다. 동네 야산을 넘어가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스릴, 안 해 본 것을 해 보는 것은 그런 느낌을 준다. 황량한 바다를 향해, 거칠고 거대한 돌이 얼기설기 얽힌 방파제를 몇 시간이고 꿋꿋이 걸어가던 일. 어린 지우에게 위험하기도 하고, 어려운 길이었지만 가족이 함께한 그 풍경이 지금와서 아름답게 느껴진다.